단 한번 뿐인 사랑

1. 나는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잘 한다. 가까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 길가다가 장보다가 쇼핑하다가 술마시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이랑 말을 잘 튼다. 그런다고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일 걸 알기에 더 편히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사이의 사람들. 전생에 나는 대숲이었을지도 모름 ㅇㅇ

2. 무튼 이렇게 알게된 사람 중에 순애남이 있다. 나이도 어느 정도 있고 자기 직업도 있고. 근데 집안 사정이 있어서 결혼이 조금조금 늦어지다가 이제는 그냥 독신을 고집하게된 그런 분이다. 이런 분이 문득 자기의 러브스토리를 이야기해주었다. 자기는 세상에 정말로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그런데 같이 살 수는 없다고.

3. 왜냐면 여자분이 유부녀이기 때문이다. 동창회에 나갔다가 (여러분 동창회는 위험한 곳입니다 ㄷㄷ) 어렸을때 투닥투닥 싸우던 여자애를 조우했는데. 어려서는 이쁘지도 않던 그 녀석을 다시 만나는 순간 주위가 그냥 환해보이는것 같았단다. 결혼해서 이미 아이들이 있고, 다른 친구들 눈에는 그저 아줌마로 밖에 보이지 않는 여자였는데 자기에게는 정말로 빛나는 사람이었다고.

4. 근데 그 여자분도 나름대로 결혼생활에 무슨 불만이 있었는지, 순애남과 하룻밤을 보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말하자면 순애남은. 딱봐서 기골이 장대한 스타일. 아주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꼿꼿하고 바르게 생기고, 뒷모습은 모델같이 생긴 그 나이대의 훈남이다. 특히 결혼 안한 나이든 남자에게서만 보이는 여유가 더해져서 소위 아저씨 냄새가 나지않는 나이든 훈남(?) 느낌.

5. 자연스럽게 솟구치는 성욕은 그때그때 원나잇 스탠드로 해결하는데. 클럽 이런데서 만나는게 아니라 남편이 섹스를 거부하고, 근데 본인은 아직 하고싶은 한창때의 사모님들을 특정한 루트로 만난다고 했다. 어린친구들이랑 만나면 풋풋해서 좋긴한데, 나이든 쪽을 만나는게 더 편하댔다. 서로 돈을 주고받는 관계는 아니고, 가정을 깨지않으려고 하기에 딱그냥 ㅅㅅ파트너? 정도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무튼간 여자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6. 그런 사람이 왠 아줌마를 보고 평소랑 똑같이 정사를 치르고. 그런데 갑자기 로맨스에 빠진 것이다. 그녀의 뱃살도 예쁘고 방귀도 예쁘고 애들도 예쁘고 심지어 남편마저도, 그녀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 사람이므로 귀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댔다. 그녀가 절대로 가정을 깨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이상 자기랑 잠을 자지 않고, 자길 의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만나지 않아도 그냥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녀가 밝게 웃고 살아가기만 해줘도 행복하댔다. 그 이후에 이따금씩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설레어 견딜 수가 없다고..

7.그래봤자 불륜을 미화한 것.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글쎄. 결혼을 했고 가정이 있고 근데 어쩌다보니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생겼는데.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가정을 깨고 사랑하는 남자에게로 달려가는 것과, 가정을 지키고 그냥 그 사람을 마음에 묻어둔 채로 지나치는 것. 어느 쪽이 더 나은가. 어떻게 다른 남자를 사랑할 수가 있냐고 남편은 이혼을 요구해야하는가(?). 어려운 문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이해할 수 있느냐의 문제.

8.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고, 나는 적어도 그 사랑이 괜찮아보였다. 자기는 인생의 사랑을 만났고, 앞으로도 그런 사랑이 없을 것이고, 그 사람에게 곧바로 생명도 내어줄 수 있다고. 다만 대상이 이미 결혼한 여자일 뿐이라는데. 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최대 행복을 빌어주는 사랑. 상대의 마음이 쓰이지 않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숨기는 사랑. 어떤 의미로 나는 이 사랑이 굉장히 숭고하다고 본다. 여러가지 사랑이 존재하는 마당에 이런 사랑 정도 하나 있는건 나쁘지 않잖아.

9. 그분은 나중에 그녀가 사는 도시에 직장을 구해 살고 싶다고 했다. 욕심나지 않냐고, 사랑하는 여자와 살고있을 남편이 밉거나 질투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건 그 사람 사랑의 몫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먼저 만나고 사랑한 것이 그 남자이니 당연하다는 것. 대신 욕심을 낸다면, 그녀가 남편이랑 행복하게 살다가 혹시라도 사별하게 된다면 그때 호호백발이 된 할머니 그녀랑 같이 좋은 연인으로 귤도 까주고 틀니도 끼워주며 오손도손 지내고 싶다고.....하... 여기까지 듣고 울음이 울컥 삐져나왔다.

10. 모든것을 끌어안는 저런 사랑이 있을진대 나의 사랑은 너무 일차원적이라 웃음이 난다. 상대에게 토라지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결국 화해하긴 하지만 다양한 감정을 겪는 우리들. 내가 투정부려도 받아줄거라는걸 알기 때문에, 믿기 때문에, 혼자 삭힐 수 있는 일도 괜히 티를 내며 삐치고 뾰루퉁해하고 발을 구른다. 그러면서도 난 언제쯤 저런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남자친구와 계속해서 사랑을 하다보면 저렇게 포용력 있는 사랑을 하게될까? 이게 그런 사랑이라고 믿고 살다가 저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한편으로 사무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하지? 괜스레 걱정해본다.

덧글

  • 2017/08/13 08:11 #

    평생에 걸쳐서 그런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어찌보면 축복일 수도 있겠네요.
  • 2017/08/13 18:35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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